단순화 되는 사람들


어느 순간 찾아온 느낌은 아니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뭔가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느껴졌다.

 

약이라도 빤 것처럼 기발하고, 날카롭고 절묘한 감각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약빨이 떨어지고 무뎌저 가는 건가 싶었다.

 

하루 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넘쳐나는 갖가지 센스들을 따라가진 못할 망정 매너리즘에 빠졌고, 게을러졌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그랬기도 했지만 번아웃과 무기력 탓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던 거 같다.

 

날카롭던 감각의 꽃미남은 이제 날카로운 신경질이나 부리는 꼰대 아저씨가 되어 부귀영화도 누리지 못한 채, 찾아오는 손님들처럼 낡고 찌들은 이자카야의 끈적한 테이블에 앉아 쓸쓸히 질척거리며 살아가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제 (나의) 세상이 끝났다고 포기하며 살던 최근의 어느날.

 

여느 때와 같이 '아... 이건 또 어떻게 하라는 걸까' 하며 나에게 던져진 일을 보고 있었다.

 

'이거, 자료 조금만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는 걸 왜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 넘기듯 일을 패스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 언젠가부터 무언가 설명하기 힘들었던,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았던 이유가 떠올랐다. 혹시 그게 아닐까? 하는.

 

문제는...

 

이라기보다... 

 

대략 5년쯤 전부터 시작됐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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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내 분수를 모르고 작업을 두고 윗사람과도 참 여러번 싸웠다. 나중에 그때의 내 작업을 보면 얼굴이 확 뜨거워지긴 하지만... 아무튼, 그땐 서로의 생각과 의견 차이로 언성도 높여가며 싸우고 그랬다.

 

다음 단계로 일을 넘기거나 다른 부서 사람에게 일을 의뢰를 할 땐, 요점을 파악하고, 문제를 고민하고 생각해서 전달했다. 그래도 어디선가 부족한 점이 있어 질문이 들어오면 다시 설명하고 싸우고, 맥주 한 잔 하고.

 

그게,

 

한 5년쯤 전부터 뭔가,

 

일을 부탁하거나 의뢰하는 게 아닌, 자신이 할 고민과 생각까지 떠 넘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 다른 사람이 고민하고 생각해서 피드백을 주면 ‘좋아요/싫어요’를 선택만 하는 느낌.

 

그래서 뭔가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감각이 아닌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거 같다.

 

나는 여전히 젊고 잘생겼으며,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생각한다... 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