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으로 와요 - 하라 히데노리(HARA Hidenori)


하라 히데노리(HARA Hidenori) 내 집으로 와요


처음 이 작가(하라 히데노리-HARA Hidenori)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게, 미술학원을 다니던 고3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다니던 미술학원 근처에 진짜 작고 허름한 중고 책방이 있었고 대부분 고서나 누렇게 빛바랜 소설책을 취급하던 책방이었는데 얼마 되지도 않고 전권도 아니요 이빨 빠진, 만화책만이 햇빛이 비추는 책방의 입구쪽 전면 유리창쪽에 좌판식으로 늘어놓고 있었다.

토요일, 그나마 학교와 학원 수업이 일찍 끝나면 집에 가기 전에 책방에 들려 만화책을 구경하고 가끔 사가기도 했는데 그때 우연히 이 작가의 책을 보고 거기에 있던 6권을(물론 띄엄띄엄 낱권으로 널부러진) 사들고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우리들의 리그"라는 해적판 제목으로 나온 야구 만화인데 지금은 그 해적판을 버렸는지 어땠는지 모르겠고 나중에 "그래하자"라는 정식판을 구해서 갖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와 하라 히데노리(HARA Hidenori)의 다른 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가 우연히 "내집으로 와요"라는 작품을 구하게 돼서 어젯밤 침대에 누워 읽기 시작했다.

앞서 같은 작가의 야구만화 (조금 열혈, 땀, 우정, 꿈)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냥 알콩달콩 연애하고 싸우고 울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반적인 순정만화를 예상했었는데 뭐랄까.. 꽤나 진지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주인공 커플의 심리라기 보다 그들의 감정, 느낌, 생각을 정말 섬세하고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정말 슬프다. 읽는 동안 감정이입과 함께 나의 기억, 경험, 반성, 다짐 등. 남녀 주인공의 꿈에 대한 열정을 보고 있노라니 그림을 그려 먹고 사는 나라는 사람에게 반문하는 건 아닌가. 날 채찍질 하는 건 아닌가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내가 지금껏 정말 많은 만화를 읽어 본 건 아니고 더욱이 순정만화나 남녀의 사람 얘기를 주제로 한 만화는 더 적게 봤지만 읽어봤던 과거의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과거의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선 어느 한 쪽의 입장은 이해되고 다른 한쪽의 입장엔 공감이 가지 않았던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스토리를 위한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작품은 결말을 보더라도 "아 그래,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누구의 잘잘못도 아닌.."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여운이 강하고 오래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새벽 5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전부 읽어버리고 나니 쓸쓸하고 아쉽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에 잠을 못 이뤘다.

나에게 있어 엘프사냥꾼을 이은 번째로 멋진 만화가 같다.



꾸물

딴지일보 마빡을 만드는 정착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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