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만화만 한 5년 그리다가 고2 여름방학에 늦게 미술학원을 등록하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석고 소묘로 시작해 고3 여름즈음부터 석고 수채화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묘도 잘하지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석고 수채화를 그리게 되더군요
처음 강사선생님이 빨간 벽돌을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등 여러가지 색을 막 칠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 붉은색으로 보이는 벽돌로 그려 내시더군요.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고 그냥 따라하면 되는 줄 알고 색을 칠하고 보니 오색찬란 무지개 벽돌 완성!!
2~3주 후에 수채화실에 나이가 들어보이시는 한 아저씨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그 분이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화가라고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그날부터 여름방학 동안 그 화가 선생님과의 1:1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 전에 배웠던 여러가지 색의 향연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말없이 지켜보시던 선생님께서
"이 자슥아 저그 아그리파 눈썹이랑 코 끝, 턱이 그리 시크믓나" 하시더군요
그리곤
"니 저 석고상 얼굴 똑바로 쳐다봐라 어디가 제일 어두운가" 라고 말을 이으셨습니다.
저는 한 1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눈 안쪽이랑 콧구멍이 제일 까만 거 같습니다."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래, 그럼 그렇게 기리라"
그게 제일 처음 가르침이었고 석고상에 이어 다른 정물 역시 보이는 대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름방학의 특강을 아저씨 선생님과 함께하고 난 후 도화지 앞에 앉아 수채화를 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색 외에는 다른색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계속 머릿속에선 저건 빨갛고 저긴 빨간거 위에 조금 초록기가 도는 색이네..
이렇게 그리게 되더군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면서 이젠 참고 이미지 없이 머릿속에서 조명을 만들고 그림자를 그리고 색의 변화로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는게 수능시험지 앞의 초등학생마냥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 버리더군요.
아마도 그래서인지, 그나마 그림을 진행할 수 있게 흰색과 검은색이 석인 파스텔 톤과 회색톤으로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림 앞에 앉아 고민 고민을 해봐도 어떤 색이 어느 부분에 들어가야 하는지 참고 이미지의 색이 다르다거나 아예 그런 이미지 조차 없이 머릿속에서 계산해 내어 그릴 때에는 그 수 만가지 색상을 선택하지 못해 수 십번을 칠했다 지웠다 덮었다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제 상황을 얼마전에 왜 난 그림이 이런식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10년을 넘게 만화를 그려오던 습관이 떨어지지 않고 남아서 그림의 경계부분은 선으로 그려버리게 되더군요.
이런 방식이 제 안에서 저만의 색깔로 완성된다면 상관이 없지만 이미 눈과 마음은 멋진 대가들 처럼 그리고 싶다는 로망으로 채워져 있어 이도 저도 아닌,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는 단계에 수 년동안 머물러 있네요 ㅎ
이런 얘길 잘그리는 친구에게 찌질대며 "나 그림 많이 못그리는듯 ㅋ" 했더니,
친구는 "난 밥을 먹을 때 내가 젓가락으로 떠낸 밥 알갱이도 어떤 색인지 관찰해, 잠자기 전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그림도 그리고.."
라는 말로 상황 종료.
그에 반해 전 대부분 화면 안의 구도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서 구도 안에 사물이 어떤 아웃라인으로 어떤 색을 갖고 있는지만 보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평소 생활하는 공간속이나, 영화를 보더라도..
술먹고 취해서 쓰는 건 아니고 그냥 새벽이라 그런듯..
새벽에 쓴 글은 다음날 보면 쪽팔린다는데..
그냥 둘 생각. 난 싸구려니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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