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南漢山城) - 마천에서


5월 8일 어버이날 이었다.

매번 말로만 한 번 등산가자 하는 친구들에게 전활 걸어 남한산성 갈 거니까. 5대기 하고 있으라고 한 후, 화창한 날씨의 축복을 받으며 남한산성에 가기로 했다.

가기 전날 도대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몰라서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지하철 8호선 산성역이나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어디 어디로 가라고 했는데, 5호선 종점 마천역에 사는 절친녀석이 그러는 거 아니다 하며, 자신이 셰르파[Sherpa]가 될 테니 나에게 닥치고 마천역으로 오라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와 친구녀석 안내를 받고 쫄래쫄래 따라가다 보니 재래시장 비슷한 게 나오고 얼마 가지 않아 '여기부터 하남시 입니다' 하는 팻말이 나왔다.

평소 남한산성 가면 도토리묵 먹어야지 했던 다짐을 뒤로 하고즐비한 도토리묵 파는 가게를 지나 올라가는 중간에 친구녀석의 부모님이 다니시는 호국사자사에 먼저 들려 잔치국수를 얻어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절 같은 곳에 오면 무조건 찍어야 하는 단청과 풍경


마침 부처님 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니와 친구녀석 아버님께서 근처 군부대에서 근무하셔서 민간인 신분으로 들어갈 있었다.



이곳이 남한산성의 서문인데 이름은 까먹었다

검색해 보니..



남한산성 우익문 [南漢山城右翼門]

서문은 산성 북동쪽에 있는 문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우익문(右翼門)이라 한다. 광나루나 송파나루에서 가장 가깝지만, 경사가 급하여 당시 물자를 수송하던 우마차 등은 이 문으로 드나들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의 폭은 1.46m이고, 높이는 2.1m다. 동문처럼 홍예식으로, 장방형 홍예기석 위에 5 매의 홍예석을 올려놓았다. 안쪽에는 2짝의 목재 판문을 설치하였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인조가 세자 등과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러 삼전도로 나갈 때, 이 문을 지났다.




이곳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기도 한 '수어장대'


수어장대 (守禦將臺)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바깥쪽 앞면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이, 안쪽에는 ‘무망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무망루’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 땅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건물의 규모는 1층은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2층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2층 4면의 바깥기둥은 1층의 높은 기둥이 연장되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96년에 유수 박기수가 다시 고쳐 세운 것으로 인조 2년(1624)에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남한산성은 최근 세계유산 등재 우선 추진대상에 선정됐다고 한다.



꾸물

딴지일보 마빡을 만드는 정착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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